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필 나이트, 통장 잔고가 0이 된 1975년 5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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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75년 5월 어느 아침, 오리건주 비버튼. 필 나이트는 책상 위 전화기를 한참 동안 노려보고 있었다. Blue Ribbon Sports — 곧 Nike가 될 회사 — 의 운영 통장은 비어 있었고, 그날 일본 종합상사 닛쇼이와이(日商岩井)에서 발행한 약 100만 달러어치의 어음이 부도가 날 참이었다. 회사가 죽는다는 뜻이었다.

 

사진출처: 나이키

 

자서전 Shoe Dog(2016)에서 나이트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. 자기 회사는 매년 두 배씩 성장 중이었다는 것이다. 매출은 폭발했고, 신발은 부족했으며, 주문은 밀려들어왔다. 그런데 바로 그 성장이 그를 죽이고 있었다. 더 많이 팔수록 더 많이 사야 했고, 더 많이 사려면 더 많은 외상이 필요했다. 그리고 그날, 거래 은행이던 First Security Bank가 갑자기 라인을 끊었다.

 

그는 변호사도, 경리도, 아내도 아닌 자신의 회계사 칼 헤이즈에게 전화했다. "통장에 얼마 있지?" "거의 없습니다." 그날 나이트가 직원들을 모아놓고 한 말은 짧았다고 한다. "오늘 우리가 망할 수도 있다. 그러나 망할 거라면, 마지막까지 일하다 망하자." 그리고 그는 다시 닛쇼이와이의 도쿄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. 영어가 어색한 임원 한 명이 받았다. 나이트는 — 그가 평생 잘 못한 일, 부탁 — 을 했다. 사정을 설명했고, 끝까지 갚겠다고 했고, 며칠만 어음을 막아달라고 했다. 잠시 침묵 후, 일본 측은 그를 믿어주기로 한다.

 

그날 회사는 살아남았다. 나이트는 훗날 쓴다. "우리는 사업을 한 게 아니라, 그냥 신앙(faith)을 한 거였다." 1년 뒤 같은 닛쇼이와이의 도움으로 Nike는 다시 호흡을 찾고, 1980년 IPO에서 닛쇼이와이의 지분은 수억 달러가 된다. 그러나 그 1975년 5월의 진짜 자산은 매출도, 디자인도, 신발도 아니었다. 남에게 부탁할 줄 아는 용기, 그리고 그 부탁을 받아준 누군가였다.

 

오늘의 한 줄

"The cowards never started and the weak died along the way. That leaves us." — Phil Knight, Shoe Dog

한국어로 옮기면 "겁쟁이는 시작하지 않았고, 약한 자는 도중에 쓰러졌다. 남은 건 우리다." 거창한 비전이 아니라, 그저 아직 안 죽었다는 사실에서 길어 올린 자긍심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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